2007년 10월 빛의 가치를 전하는 반딧불이

Posted by on Jul 18, 2013 in 생태자료실 | 0 comments

빛의 가치를 전하는 반딧불이

 

 

깜깜절벽. 눈앞부터 깜깜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를 어른들은 깜깜절벽이라 했다. 사진반이었던 대학 시절, 필름을 현상하려고 암실의 전등을 끄면 잠시 깜깜하지만 동공이 확장되면 벽 틈에서 작은 빛이 새들어오는 게 보였다. 깜깜절벽은 다르다. 시간이 지나도,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는 게 전혀 없다. 가름할 수 없는 시커먼 사방이 집어삼킬 듯 엄습한다.

눈을 뜨나 감으나 사방이 똑같은 깜깜절벽은 볼 수 없는 실체다. 오직 경험할 뿐이다. 1970년대 중반 여느 여름, 계룡산에서 깜깜절벽을 경험했다. 억수 같던 비가 멈춘 밤, 산기슭에서 텐트 자리를 찾던 일행은 문득, 전등 빛이 멀리 퍼져나가는 하늘에 달도 별도 없다는 걸 알았고, 어떤 이의 제안으로 일제히 불을 껐다. 일순, 깜깜절벽.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숨소리마저 줄인 일행에게 두런두런 말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줄 뿐, 그야말로 경이로운 어둠이었다.

일행이 바로 옆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게 만드는 깜깜절벽에 신기해하는데, 손에 잡힐 듯, 한 줄기 곡선의 빛이 모스 부호처럼 깜빡깜빡 눈앞을 지나갔다. 반딧불이었다. 한 마리가 빛을 내자 여기저기 빛이 춤을 추더니, 웬걸, 풀숲에서, 어깨와 머리 위에서, 깜빡이는 곡선을 그리며 반딧불이들은 한바탕 향연을 벌였다. 깜깜절벽을 한순간에 밀어낸 어둠 속의 반딧불, 애반딧불이인지 늦반딧불이인지 모르는 그 반딧불이는 칠흑에 갇힌 우리의 뇌리에 빛의 가치를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이끼에 알을 낳는 반딧불이는 애벌레 때 다슬기를 먹는다. 그래서 반딧불이는 요즘 통 보이지 않는다. 오염된 산간 계곡에 이끼도 다슬기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혀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깊은 산 속 인적이 드문 계곡 주변의 습지에서 더러 반짝이고, 드물게 도시 인근의 작은 산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양팔 간격으로 심은 나무 사이로 자연이 발아시킨 나무가 다채롭게 자라오르면서 숲은 다양성을 회복하고, 오가는 시민들의 의식이 달라지면서 맑은 물의 흐름이 방해받지 않자 나타난 가녀린 빛이다.

깜깜절벽은커녕 어둠도 경험하기 몹시 어려운 요즘, 반딧불이 사람의 눈에 띌 순간이 전에 없이 줄어들었다는 걸 반딧불이는 알고 있을까. 괘념치 않겠지만, 반딧불이의 빛, 다시 말해 반딧불은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는 사람의 의지를 강하게 북돋운다. 어둠에 익숙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은 저녁 무렵 네온사인에 끌리거나 텔레비전 앞에 앉고, 전등 없이 어두운 산길을 천천히 지나가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밤에 산에 드는 이는 산을 상당히 좋아할 게 틀림없다. 그의 눈에 반딧불이 들어온다. 십중팔구 그는 반딧불이가 그 산에 산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반딧불을 만나는 건 아니다. 반딧불을 보고 싶은 마음은 산을 좋아하는 성향과 대체로 무관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반딧불을 보고 싶은 게 분명하다. 반딧불이가 많아 천연기념물 322호로 지정된 덕유산국립공원의 무주구천동은 해마다 ‘반딧불축제’를 여는데, 작지 않은 입장료를 흔쾌히 부담하는 사람들이 운집하지 않던가.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가 밤하늘에 연출하는 빛의 향연에 넋을 잃는 관광객은 입장료를 더 내고 들어가는 ‘반디랜드’에서 형설지공을 체험하고, 계곡에 풀어놓은 송어를 잡으며 90여 가지 프로그램에도 취할 것이다. 그들은 무주구천동 계곡이 상류의 송어 양식장과 주변의 골프장과 스키장으로 오염되었다는 사실에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50년 이상 자생한 숲은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생태학자는 높은 산의 습지는 반드시 지켜야 숲이 보전된다고 더욱 강조한다. 무주구천동을 오염시키는 골프장은 그런 습지를 메우며 50년 이상 자란 나무를 무참히 잘라 만들었다. 그러자 천연기념물이 무색하게 반딧불이는 사라졌고, 환경단체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자 골프장을 허가한 지방당국과 골프장을 개장한 회사는 인공시설에서 반딧불이를 키워 계곡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주구천동의 반딧불축제는 시작됐다. 사람이 내준 다슬기를 먹다 성체가 된 반딧불이는 밤하늘을 잠시 수놓다 며칠 지나지 않아 죽고 만다. 폐수와 농약으로 오염된 계곡 주위에 성한 이끼가 태부족인 탓이다.

전북 무주군이 반딧불로 뜨자 경북 영양군도 나섰다. 애반딧불이를 맞아 반딧불축제를 6월로 앞당긴 무주와 달리 늦반딧불이를 보라며 축제일을 8월 말로 정한 영양군의 프로그램도 요란하기는 마찬가지다. 반딧불이는 그저 돈벌이를 위한 미끼다. 반딧불을 보려는 관광객들은 다슬기가 사는 계곡에 들어가 은어 잡자고 첨벙일 것이다. 형설지공과 생태학습의 체험을 내세우지만 반딧불이의 처지에서 생태는 없다. 그러니 학습도 없다. 재미를 쫓는 한 여름 밤의 체험으로 그칠 따름이다.

인천시의 진산인 계양산에 반딧불이가 나타났다. 몰려든 피난민의 아궁이 속으로 숱한 나무가 잘려 들어가 시민 기억 속에 한동안 황폐했던 계양산이 생태계를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빛을 보낸 것이다. 심은 소나무가 울창해지고 그 주변에 참나무를 비롯한 다채로운 활엽수가 자라오르자 맑은 물이 보전되었고, 생태의식이 깃든 시민들이 진산을 아끼면서 이끼도 다슬기도 돌아왔나 보다. 실로 오랜만에 반딧불이를 만난 시민들은 그 사실을 침묵에 붙였다. 아니 붙이려고 했다. 굴지의 대기업이 하필 계양산에 골프장을 만들겠다고 고집 피우기 전까지.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인천시장과 그 휘하의 공무원, 계양구청장과 그 휘하의 공무원들이 골프장 유치를 외치는 앵무새가 되었고, 생태계 보전을 내세우던 도시계획위원들이 골프장 계획에 일사분란하게 찬동하며 표결을 강행했다. 계양산의 회복을 축하하던 반딧불이는 그만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한해 수 조 원의 예산을 자랑하는 광역시에서 수 십 억의 지방세 수입을 앞세우며 수 천 억 짜리 부가가치를 대기업에 헌사한 처사는 후손의 처지에서 전혀 지속가능하지 않다. 반딧불이의 처지에서 깜깜절벽이다. 차라리 범죄다.

1070년대의 사람에게 빛의 가치를 선사한 반딧불이는 21세기에 버림받았다. 사방이 휘황찬란한 요즘, 어둠을 잃은 우리는 빛의 가치를 영영 잃어버리고 마는 것인가. 석유와 핵이 그 바닥을 드러내는 마당에, 다시 나타난 반딧불이에게 미안하다. 생태계 보전을 위한 형설지공은 이제 꿈이런가.

박병상(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