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해안사구를 떠날 수 없는 표범장지뱀

Posted by on Jul 18, 2013 in 생태자료실 | 0 comments

해안사구를 떠날 수 없는 표범장지뱀

 

 

대승령을 거처 설악산 십이선녀탕으로 오르려면 장수대에서 잠시 숨을 골라야 한다. 처음 드는 일행에게 산길이 무척 가파르다. 1990년대 중반. 국립공원 장수대 분소 사무실 주변 숲에 대학생들이 모였다. 고도가 높은 지역에 분포하는 식물을 조사하러 지도교수를 따라온 대학생이었다. 그들을 인솔할 책임을 진 대학원 선배는 걱정이 태산 같은지, 신입생이 대부분인 후배들을 모아놓고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데, 대학원생 뒤에서 문득 작은 움직임이 보였다. 부셔진 햇살이 따사로운 돌담에 비죽 고개를 내민 표범장지뱀이었다.

충청남도 태안군 신두리는 ‘해안사구’라 하는 모래언덕으로 유명하다. 바닷가의 야트막한 모래언덕을 차지한 펜션단지를 등지고 십여 분 걸으면 바다에서 완만하게 이어지는 넓은 모래언덕이 펼쳐진다. 200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해안사구다. 햇볕 따사로운 날, 이용객의 경각심이 새로워지면서 해당화 자생 면적이 늘어나고 종달새가 종종 모습을 드러내는 신두리 해안사구를 조심스레 거닐어보자. 뿌리를 깊게 내려 모래를 붙잡아두는 통보리사초 주위를 유심히 살펴보면, 모래에 몸을 파묻고 꼼짝 않다 눈앞에 어정거리는 작은 곤충을 잽싸게 잡아먹는 표범장지뱀을 만나는 행운을 만날 수 있다.

연한 갈색인 머리 뒤에서 꼬리까지, 하얀 보석을 박았는지 가운데 흰점이 또렷한 갈색 원형 무늬가 15센티미터 남짓한 몸통에 대여섯 줄로 이어지는 표범장지뱀은 네 다리를 가진 도마뱀 종류다. 그래서 뱀처럼 갈라진 혀를 가끔 날름거리지만 뱀과 달리 눈을 깜빡인다. 줄장지뱀이나 아무르장지뱀과 달리 꼬리가 몸길이의 두 배에 미치지 못하고, 통통한 몸을 가졌지만 행동은 재빠르다. 햇빛에 반사되는 비늘이 가는 모래를 닮았을 뿐 아니라 몸 색도 모래와 비슷해 천적을 쉽게 따돌리지만 짝을 어떻게 찾을까. 넓은 모래밭에서 그들만의 신호, 페로몬이라는 그들만의 향수를 내놓으며 세레나데를 부른다.

학자들이 장지뱀으로 분류하는 도마뱀 종류는 배와 이어지는 넓적다리 양쪽에 서혜인공이라라는 작은 혹이 도드라진다. 페로몬을 분비하는 샘이다. 바람이 거센 백사장에 진한 향기를 남기려는지, 좌우에 한 쌍인 줄장지뱀이나 서너 쌍인 아무르장지뱀과 달리 표점장지뱀은 서혜인공이 11쌍이나 된다. 모래가 뜨거운 7월에서 8월, 서혜인공의 공로로 짝을 찾은 표범장지뱀 암컷은 모래 속에 너덧 개의 알을 않고, 45일이 지나면 앙증맞은 새끼가 부화하는데, 새끼들은 작은 먹이를 찾아 험난한 인생길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먹이가 부족해지는 계절이 멀지 않고, 허기진 채 겨울잠에 들어가면 내년을 기약하기 어렵다.

몸에 표범 같은 점이 있는 표범장지뱀은 표범만큼이나 보기 어려운 동물이다. 2005년 3월 환경부는 멸종위기 1급인 표범처럼 표범장지뱀을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 함부로 잡거나 죽이면 3년 동안 감옥에 들어갈 수 있게 보호하고 있건만 표범장지뱀은 아직 늘어나지 않는다. 연구 목적 이외에 표범장지뱀을 잡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문제는 바다나 강가의 모래밭과 같은 표범장지뱀의 환경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콘크리트로 버무려지기 위해 사람이 바다나 강에서 퍼내는 모래의 양이 새로 보충되는 양보다 월등하게 많다.

태풍이 일으키는 해일이나 바다 속 지진으로 발생하는 쓰나미로 인한 피해를 막아주는 해안사구의 중요성이 어느 정도 알려진 이후 바닷가의 모래를 퍼가는 일은 예전보다 크게 줄었지만 예전에 퍼낸 양이 실로 엄청나다. 현재 진행되는 갯벌매립도 무시할 수 없다. 바다 높게 매립하기 위해 막대한 바다 모래를 제방 안에 쏟아 넣자 썰물이 해안에 남은 모래를 쓸고 내려가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닷가의 모래가 사라지면서 관광객 감소를 걱정하는 지방은 해수욕장 개정 전에 바다 모래를 퍼 나르지만 얼마 가지 못한다. 모래사장도 관광객도 표범장지뱀처럼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조선 시대의 내시와 궁녀가 아무렇게나 묻힌 무덤이 뒹구는 초안산은 노원구에서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작은 산이다. 조선 시대의 무덤을 훼손한 일제가 씨앗을 무더기로 뿌려 이른 여름이면 아카시로 뒤덮인다는 초안산에서 서울 최초로 표범장지뱀이 2006년 9월에 발견되어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가 크게 반겼다. 환경단체는 초안산을 표범장지뱀의 분포지역으로 보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는데, 그를 위한 기초조사가 진행되지 않아 성공을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표범장지뱀을 포함한 멸종위기 1급과 2급 동물과 식물이 수십 종 발견된 낙동강 하구에 이어 낙동강 하구와 가까운 부산 앞바다 진우도에 표범장지뱀의 최대 서식지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환경단체인 ‘습지와 새들의 친구’와 ‘PGA습지생태연구소’는 희귀 습지 식물인 왕잔디가 큰 면적으로 자생하는 진우도에서 사방 5미터 내에서 10 마리나 되는 표범장지뱀을 관찰했다고 지난 6월 26일에 발표한 것이다. 한데 진우도는 1997년 신항만 공사 착공 이후 펄이 섞인 모래가 쌓이고 있다. 바닷물의 흐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2003년 9월 태풍 매미로 큰 피해를 입은 주민은 해일을 걱정하는데, 진우도의 표범장지뱀은 안녕할 수 있을까. 진우도의 표범장지뱀은 떠날 곳을 찾지 못한다.

통보리사초와 해당화와 더불어 신두리의 해안사구를 지키는 표범장지뱀은 복원을 위해 애쓰는 태안군의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멸종되지 않을 것 같다. 아직 사람을 피해 몸을 숨기지만 복원이 더욱 진행돼 ‘푸른태안21’에서 희망하듯 생태환경교육장으로 활용된다면, 관찰하러 찾아온 학생들에게 귀한 자태를 잠깐이라도 보여줄 것이다. 한데, 초안산과 진우도의 표범장지뱀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멀지 않았던 과거, 전국에 흩어져 살았을 표범장지뱀은 사람들의 숨 가쁜 개발로 인적이 드문 지역에 고립돼 점점이 살아가고 있다. 남은 표범장지뱀은 바닷가 모래밭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데, 설악산의 표범개구리는 장수대에서 잘 있을지 궁금하다.

박병상(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