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가로등 아래 목이 쉬는 도시의 매미

Posted by on Jul 18, 2013 in 생태자료실 | 0 comments

가로등 아래 목이 쉬는 도시의 매미

박병상(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그럴 리가. 아무리 시끄럽게 울어도 매미는 목이 쉬지 않는다. 목청을 가다듬는 새들과 달리 매미의 울음은 목과 아무 관계가 없다. 배마디의 발음막을 수축하며 소리를 내는 까닭에 한참 울면 기운이야 빠지겠지만 목이 쉴 이유는 없다. 사실 머리와 가슴이 붙은 매미에게 목은 찾을 수 없다. 하지만 푹푹 찌는 한여름 낮, 한시도 쉬지 않는 울음소리는 듣는 이에게 매미의 목을 걱정하게 한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하여간 우렁차다. 우렁차다 못해 성가시다. 가까이에서 매애앰 매애앰 우는 참매미와 매애애애애- 숨 막힐 듯 늘어지는 말매미는 어찌나 질긴지 노곤한 오후의 식곤증마저 무력하게 만든다. 작은 몸으로 어쩌면 저렇게 큰 소리를 길게 뽑을 수 있나. 악보에 숨표가 없어 질식해 죽은 성악가가 있다고 누가 농을 하던데, 저 말매미, 저러다 숨넘어갈라. 전문가는 배에 공명실이 있어 소리를 증폭시킨다고 재미없게 설명하겠지.

동물의 울음소리로 열리는 계절은 언제나 새롭다. 중부지방으로 올라오던 장마전선이 흐지부지 사라질 즈음, 매미는 장마가 끝났음을 선포한다. 장마철의 시름을 잊게 해주던 맹꽁이의 뒤를 이은 것이다. 삼복더위를 식혀주는 매미도 장마철을 알려주는 맹꽁이처럼 수컷이다. 기나긴 세월 땅 속에서 이날을 기다린 참매미는 큰길 옆에서 자동차 소음을 막는 아파트 둔덕의 나무에 올라 울어댄다. 매애앰 매애앰. 말매미도 경연장에 뒤질세라 동참한다. 매애애애애-. 이윽고 아파트 베란다 문이 경쟁하듯 닫힌다.

사무실의 에어컨에 머리가 아파 창호를 활짝 열면 선뜻 넘어오는 매미 소리. 잔디밭 너머 저만치 떨어진 나무가 창가로 다가온 듯 귀청이 얼얼하다. 75데시벨로 울어 주거지역 소음 기준 50데시벨을 훌쩍 뛰어넘는다. 휴가 일찍 다녀온 동료는 시끄럽다 푸념하지만, 무더운 여름날, 매미마저 없다면 일은 손에 잡히지 않을 것이다. 저 매미는 하필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도시에 깃들었을까. 시끄럽고 오염된 도시에서 저토록 성화일까.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매미 종류 중 덩치가 가장 커 몸길이가 45밀리미터 남짓에 날개까지 65밀리미터 정도인 말매미는 6년을 땅 속에서 절치부심했다. 6년 전, 유난히 우렁찼던 짝을 만난 어미가 플라타너스 가지에 20밀리미터의 가는 타원형 흰색 알을 네댓 개 찔러 넣었을 때만 해도 견딜만했을지 모른다. 1년 만에 황백색으로 변한 알에서 애벌레로 부화해 땅에 떨어질 때 잠시 보았던 도시는 6년 동안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빨아먹던 뿌리 수액이 해마다 시큼해지는가 싶더니 겨우 흙을 털고 올라온 세상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이러니 제 짝을 찾을까 싶다.

10년 이면 바뀌던 강산이 요즘은 3년이면 뚝딱인데, 요즘 매미의 한살이는 고달프기 짝이 없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이지 않아야 하는 건 물론 개발을 위해 뽑히는 나무를 용케 피해야 삼복의 햇볕을 만끽할 수 있다. 산성화가 심화된 대지를 뚫고 나무줄기로 오른 수컷에게 주어진 시간은 달포. 일가를 이루려면 시간 내에 짝을 기필코 찾아야 하는데 어찌 사생결단하지 않을 수 있으리. 어쩌면 도시라서 매미는 더 시끄럽게 우는 걸지 모른다. 자동차 소음으로 뒤덮인 작은 녹지에서 경쟁마저 치열하므로.

동이 트자마자 울어대는 매미는 알람시계를 대신하는데, 요즘엔 밤잠을 설치게 시끄럽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 목 쉬어라 울어 젖히는 까닭이다. 그게 민원이 되었나. 작년 이른 가을, 한 무리의 인부들이 둔덕의 플라타너스를 몽땅 밑동에서 잘라내는 게 아닌가. 구멍이 숭숭 뚫린 플라타너스 그루터기. 오래 전 이 땅에 들어온 매미는 어찌 플라타너스를 탐했을지 알 수 없지만, 민원에 지친 관리사무소는 일본잎갈나무로 교체했는데, 매미는 올해도 어김없이 운다. 떠날 수 없는 처지라서 그럴까. 가엽다. 그래도 울어주니 고마운데, 6년 후에는 어떨지.

미국 중서부에는 17년마다 수십 억 마리의 매미가 몰려나와 90데시벨 가까운 소음으로 한꺼번에 울어댄다고 한다. 17년 만에 출현한 매미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시카고는 유서 깊은 음악제를 취소할 지경이었다는데, 16년 동안 조용하다 짧은 시간 쏟아져 나온 매미가 얼마나 많은지 옷소매나 호주머니, 심지어 하품하면 입으로 들어갈 정도였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매미는 차라리 애교로 보아도 무방할지 모르겠다.

어둡고 축축한 땅 속에서 6년, 길고 지루하고 무섭다고? 그건 오로지 사람 생각이다. 매미 인생의 대부분은 땅 속에서 이루어진다. 햇볕 내리 쬐는 나무는 짝을 찾아 알을 낳고 죽기 전까지 잠시 들리는 모천에 불과하다. 20여 일을 살기 위해 나무뿌리 아래에서 오랫동안 절치부심했다는 해석도 틀렸다. 사람이 진화돼 세상에 나온 기간보다 훨씬 긴 세월에 걸쳐 그렇게 적응해온 매미에게 달콤한 수액이 흐르는 나무뿌리는 아스팔트나 자동차와 바꿀 수 없는 행복한 환경일 게 틀림없을 것이므로.

아빠 손잡고 조심스레 나무줄기에 다가가는 아파트의 아이들. 다른 손에 잠자리채가 들려 있다. 마음을 나눌 동물과 자연이 주변에 없는 오늘의 아이를 보니 문득 어릴 적 매미 잡던 기억이 떠오른다. 큰 나무 굵은 줄기에 꼭 붙어있는 매미는 잠자리채를 아래에서 훑어 올려야 잡기 쉬웠다. 잠자리 잡듯 위에서 덮으면 줄기에서 툭 떨어지다 휙 날아가 버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침저녁이 쌀쌀해질 테고 우렁차게 울던 매미도 기운을 잃을 텐데, 옛날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좋겠지.

모천이 오염되면 연어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매미도 마찬가지다. 매미 울음소리가 시끄럽다고 나무 밑동을 뚫어 방제액을 투입하지만 나무를 위한 배려는 아니다. 나무에게 매미는 분명히 천적이지만 훨씬 지독한 천적은 사람이다. 아예 잘라내지 않던가. 사실 매미 때문에 말라죽는 나무는 그리 많지 않다. 생태계는 서로 돕기 때문이다. 우리 매미가 일본잎갈나무도 싫어하지 않을지 6년 후가 걱정인데, 매미마저 깃들지 못하는 도시는 얼마나 적막할까.

입추를 거쳐 말복이 지나면 극성스러웠던 매미의 울음소리는 어느덧 잦아들고 가로등 빛이 닿지 않는 후미진 구석부터 귀뚜라미가 울 것이다. 그렇게 계절은 흐른다. 계절의 흐름에 맞춰야 내일이 건강하다.